30년 외길, 유일무이 흑자 도예가 <김시영>


김시영

Kim Syyoung


“가마 속의 불은 끝을 알 수 없으며, 그 자유로움 안에서 흑자의 숭고함을 발견한다.”

-김시영
김시영 도예가는 오늘도 1300도가 넘는 화염 가마 앞에 선다

화염의 연금술사. 
30여 년 간 이어온 작업의 핵심 요소는 ‘불’이다. 그는 1,3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캔버스 대신 흙으로, 물감 대신 불로 그림을 그린다. 

김시영은 1958년 태어나, 일본에서 서도가로 활동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본의 도자 문화와 먹의 검은 색을 접하였다. 그는 용산공업고등학교 재학시절 용광로 속 화염이 물질을 변화시키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이후 대학 산악부 시절 우연히 마주한 흑자는 금속공학과 전공이었던 그를 도예가의 길로 이끌었다. 

고려시대 이후 명맥이 거의 사라진, 우리나라의 전통 흑색과 적갈색을 띤 흑자를 재현하기 위해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하던 김시영은 1988년 전통 장작가마를 짓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1997년 잠실 롯데갤러리에서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거기서 이어진 정양모 전(前)국립중앙박물관장과의 인연은 작업의 학문적, 역사적인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흑자는 작업 과정이 쉽지 않고 불의 변화를 세밀하게 따라잡아야 해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흙을 빚고 불과 싸우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다른 도자에 비해 단연 길다. 현대 도예에서 청자·백자 작가는 엄청 많지만 흑자를 빚는 작가는 귀한 이유다. 김시영은 이틀에 한 번씩 가마에 불을 지펴 흙과 불의 세기를 연구하며 결국 전통적인 흑색과 적갈색이 나는 흑자를 재현해 냈다. 이 시기에 그는 고려시대 이후 맥이 끊겼던, 우리나라 전통 흑자의 재현뿐 아니라 도자 작업의 계기를 마련해준 송요변다완의 재현을 성공하기에 이른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 선생은 김시영을 ‘수도자적으로 작업하는 도예가’라 칭했다. 본디 공학을 전공했던 김시영은 과학적인 태도로 작업에 임하였다. 불 조절이 용이하면서도 가마 안의 분위기가 변화무쌍한 등유가마를 이용하여 매일 1300도의 불길을 세심하게 수정하길 20여년, 김시영은 3000여 번의 가마 작업 끝에 작가만의 독특한 색감과 질감의 요변을 탄생시켰다. 어둠속에 피어나는 잔잔한 변화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로움과 묵직함을 느끼게 해준다. 철분이 든 약토(유약)를 발라 굽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빛깔이 나온다. 흑자지만 여러가지 컬러가 담겨있는 이유다. 1년에 200일 가량 불을 때며 불을 연구한 그는 아직도 ‘완성’이 아니라고 말하며 불 조절 연구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김시영의 흑자는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꽃들과 같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그 후 김시영의 작품은 또 다른 미감으로 심화된다. 1300도라는 높은 온도와 오랜 소성 시간,그리고 여러 차례 반복되는 가마 작업은 표면의 변화뿐만 아니라 작품의 형태에도 큰 영향을 준다. 이 시기부터 김시영의 작업은 경직된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역학적인 조형성을 띠기 시작한다. 성형 시 항아리의 위아래를 접합하는 방법은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의 변화를 이끌고 작품은 고온의 가마 안에서 더욱 뒤틀린다. 이 방법을 사용해 만든 김시영의 달형항아리는 역동적인 조형 작업의 시발점이 되며 점점 무정형에 가까운 형태로 치닫는다.

조각04_순간 ⓒ kimsyyoung.com

김시영은 1980년대 말-2010년대 초반까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흑자 다완과 흑자 달항아리를 작업하였으며, 2010년대 중반부터는 흑자 회화와 조각으로 다양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작품의 탄생과정인 가마 속에서 물성의 변화로 사라졌다 생겨남을 반복하는 요변 현상에 인간의 삶과 우주의 영원회귀를 녹였다. 그의 둥글고 찬란한 색채들의 회화와 조각은 인간 삶의 무한함 그 속의 황홀과 비극, 숙명들과 공명을 하는 아름다운 현재를 표현한다. 

그의 작품이 더 의미를 갖는 것은 전통 흑자의 멋과 맛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점 때문이다. 질박하면서도 깊고 중후한 맛에 더해 오색의 색상, 물방울 같은 다양한 무늬들,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인다. 흑자 재현에 성공한 1997년 그의 흑자를 접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꽃들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Victoria & Albert Museum, England)의 도자기 전문가 Beth Mckillop은 김시영 도에가의 흑자를 처음 접하는 순간 “Simply Amazing” 이라고 극찬했다.

Black ceramic tea cup ⓒ kimsyyoung.com

흙과 불의 조화를 통해 탄생된 Planet

김시영은 1350도의 가마작업을 통해 발견자의 역할을 한다. 흡사 반복되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처럼 자연물인 흙과 환원의 불의 조화를 통해 탄생된 그의 작품은 모두 planet 이란 이름으로 명명된다. 달항아리 작품들은 전통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Planet Traditional 이라는 이름으로 명명 되었으며, 일명 입 없는 도자기로 이야기 되는 그의 조각은 달항아리의 은유버전으로 탄생된 의미로 Planet Metaphor로 명명한다.

Planet Traditional 과 Planet Metaphor는 21년 밀라노디자인위크 한국공예전에 전시되었다.

Planet MS_012, 2019, 200x200x300mm, 1350도 환원소성, 천연 흙

달항아리의 은유버전인 조각. 작품의 빛깔인 서가 흑자는 가평의 흙으로 만든 김시영만의 독창적인 유색의 이름으로 상서로울 서, 가평의 가를 의미한다. 가평 잣나무숲 아래 부엽토안의 다양한 물질들이 김시영의 불작업을 거쳐 빛을 낸 작품이다. 서가색은 가마소성 방법에 따라 붉은빛을 돌기도 하고, 푸른빛을 돌기도 한다.

Planet MS_015, 2020, 260x260x290mm,1350도 환원소성, 천연 흙

이 작품 역시 달항아리의 은유버전인 조각. 달항아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 아래 접붙이기 방식을 좌우 접붙이기로 시도한 뒤, 작업의 영역이 조각으로 발전되었다. 그 기법으로 인하여 조각이지만 달항아리 특유의 미감인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Planet TL_2, 2017, 540x540x545mm, 1300도 환원소성, 천연 흙

김시영 흑자의 위풍당당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형태의 자연스러운 이지러짐과 모든것을 품은 검은색이 단연 압도적이다.

Planet TS_7, 2020, 345x345x310mm, 1350도 환원소성, 천연 흙

이 작품은 철원 DMZ의 흙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핑크톤과 청록톤 그리고 금빛으로 어우러진 요변이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김시영의 가마 불떼기 기술에 의하여 흙속의 광물질들이 자신의 빛을 발하게 되고, 어떤 지역의 흙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빛깔의 작품이 탄생된다.

Planet TXS_7, 2018, 130x130x70mm, 1300도 환원소성, 천연 흙

김시영의 다완은 그 특유의 빛반사로 인해 말차를 담게되면, 차의 녹빛이 비쳐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Collector’s Selection view

“김시영의 검은 도자기를 본 첫인상은 대단히 신비로웠다. 어떻게 불의 조화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같은 가마터에서 나온 작품이 어느 것은 석양의 노을빛을 나타내고 어느 것은 검은 바탕 위에 흰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하고, 또 어떤 작품은 검붉은 바탕 위에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첫 전시회에 가서 흠뻑 빠져들어 작품을 구매하기 앞서 작가를 만나보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단 말이오? 수줍은 듯 부끄러워하던 작가의 모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Resonance Firepainting 2, 2021, 2150 x 1450mm, 1350도 환원소성, 천연흙

그는 10년 전에는 이런 빛깔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계속 연구와 연구를 거듭해 이런 빛깔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흑자의 전통을 구현하는 일을 30년 넘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명과도 같은 일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우직하고 성실하게 작업해온 작가에게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은 일은 그의 인생에 큰 사건이 되었다. 흑유의 이런 아름다움이 당대에 끝나지 않고 계속 전승되기를 바라는 그는, 대중들에게까지 흑자의 아름다움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흑자는 제게 ‘영원’입니다. 나는 영원하지 못하니까 영원할 수 있는 걸 흙에 담으려는 거죠.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작품, 맑은 기운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 Ⅰ에이치 얼라이언스
참고Ⅰ kimsyyoung.com
[역명사문화여행] 흙의 마술사 불의 연금술사, 김시영이 꿈꾸는 영원의 BLACK   송지유 작가, 제작사 디그램 @dgram.co.kr
“흙과 불로 빚어온 30년 인생, 60대에 비로소 느끼는 예술가의 책무” © 여성조선
국내 유일, 흑유의 아름다움을 잇는 도예가 김시영  © 뉴스1코리아
정월보름에 떠오른 ‘색다른 달’ 黑磁… 도예가 김시영 ‘검은 달항아리와 그 후’전   © 경향신문

작품 문의 Ⅰsylvia@h-allian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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